“ 증 인”/ 사도행전 Acts 1:1-11

“ 증 인”/ 사도행전 Acts 1:1-11

Categories:

https://youtu.be/JQt_fxLdUgQ

 

증     인”       

제자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메세지…2천여년전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의 메세지를 들은 당시 모두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놀라움과 충격의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인생이 완전히 180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이 경험한 부활은 숨이 돌아오는 소생과는 다릅니다.죽은 사람의 호흡이 돌아와 살아나는 것은 종종 보는 일이고 신기한 일이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인생관이 바뀌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생이라고 부르지 부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자 우리의 인생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 처럼 새롭게 변화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주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라는 말입니다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새로운 삶의 영역이 시작된다 라는 말입니다 

증인으로 살라.. 부활을 경험하고 메세지를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이것이 그들의 고민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나님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5절에성령입니다.  8절에 보면 성령이 오셔서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사람들에게 권능을 주고 들은 증인이 될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부활의 메세지를 들은 자신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증인 되라는 말씀입니다.   

증인이란 .. 그런데 증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 입니다. 뜻은 순교자입니다.부활을 경험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순교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일이고 그렇게 순교자의 삶을 살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4 이후에는 이런 순교자들의 삶의 기록들이 나옵니다무시무시하죠.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 부활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니 말입니다. 우리도  부활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인데 우리는순교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순교자의 삶을 살아갈 마음이 있습니까?   

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바울은 순교자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건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마르투스란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입니다. 내가 죽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문제 부터 건드리시지 않습니까? 이전에 아무생각없이 음란하고 방탕하게 즐기던 것이 끊어지고 분노와 혈기와 원망과 두려움과 억울함등이 성령의 위로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변화되는 뼈속까지 죄인이었던 자신이 죽는 것이 바로 순교자( 마르투스) 발입니다 죄의 청산이 얼마나 힘든지 순교자의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겁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자신 스스로 수양하고 닦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그렇게 노력해 보셨지 않습니까? 판판히 쓰러지고 도로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던가요그러면 나는 안되는 모양이라고 포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무슨,, 부활과 소망은 무슨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그게 바로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죽으면 끝인데 소망은 무슨.. 이것이 죽음에 얽매이는 삶의 모습이죠아닙니다. 그게 아니라구요 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부활하신 몸과 새영을 입으신 모습을 보여주시며 외쳤지 않습니까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깨뜨렸다고 사단이 주는 죽음에 파묻혀 살지 말라고실패한 너의 모습을 보거든 오히려 감사하라고 나는 이렇게 뼈속까지 죄인으로 쉽게 무너지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방탕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구나  나의 모습 .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나 수양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구나를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너는 그렇게 죽을수 밖에 없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렇게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너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필요하다. 이것을 인정하고 주의 성령의 만지심을 소망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순교자 마르투스의 걸음입니다.    

오히려 기쁨의 환호성..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서 보았던 갈라디아서에서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 이제는 나를 위하여 살지 않는다)  말은 우울한,, 어찌 할수 없는 체념에서 나오는 한탄이 아니라  기쁨의 환호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위하여 순교자입니다. 죽은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죽은 사람은 욕을 해도꼬집어도 송곳으로 찔러도 모릅니다.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때 이상 불쾌할 것도( 매맞고 모욕당하고 쫓겨나고 모함받고 억울하고) 없고 실망할 것도 ,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칭찬을 듣는 다고 교만할 것도 없고 비방을 듣는다고 마음 상할 것도 없습니다자아의 죽음! 마르투스 이것이 부활을 경험한 믿는 사람들인  중인의 모습입니다. 내가 죽는 ( 자신을 위해 살지않고 복음과 주를 위해 사는 )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포기한 결과  가장 복되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상처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상처 받기 쉬운 자를 붙잡고 살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 역시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살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믿고 것입니다. 자기만 믿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기밖에는 자신을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은 슬퍼보입니다. 자신의 계획, , 자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죽음이 축복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죽을때 예수님이 역사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죽으면 가장 우리 가족이 축복받습니다. 주변이성령이 없는 자에게 자신의 죽음이란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하지만  성령께서 임재해 계신 성도에게 자신의 죽음은 능력있는 삶의 시작을 말합니다증인의 삶인 것이고 증인을 통하여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증인으로 살라는 도전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하나님의 만져주심과 채워주심을 소망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내가 속한 곳에서 증인으로 살아냅시다. 주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Speaker: 김성은

주님의 참빛교회 담임목사